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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23관왕 마이클펠프스 명언

Reading a Brand 2025. 5. 9.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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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실패는 또 다른 기회다.”
-마이클 펠프스-




미국의 前 수영 선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23개 획득하여
역사상 제일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이자
4관왕을 4번 달성한 선수이자
올림픽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한 대회에서 8개의 금메달을 석권하고
두 대회 연속 8개의 메달을 획득한
수영계와 올림픽에서 전설과도 같은 선수이다.



타고난 신체 스펙은 수영 그 자체에 최적화 되어있으며
어마어마한 연습량을 보였는데
은퇴 후 인터뷰에서
6년동안 단 하루도 훈련을 쉰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정도의 훈련량은 수영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2008년 방송된 EBS ‘다큐 10’에서
“저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몰라요.
날짜도 몰라요. 전 그냥 수영만 해요.”
라고 한 것은 펠프스의 훈련량과 노력을 상징하는 유명한 말이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판정을 받고
이를 극복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처음부터 본인의 의도는 아니었으며
부모님이 잘 지도해준 것도 있고
스승을 잘 만나서 열심히 훈련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마이클펠프스의 생애


1985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경찰관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7살 위의 힐러리와 5살 위의 휘트니, 두명의 누나가 있다.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서 싱글맘이 된 어머니 밑에서 컸다.
큰 누나는 대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작은 누나는 14세 때 미국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에 나갈 정도의 엘리트 체육인이었다.
당연히 펠프스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힐러리와 휘트니의 '동생'으로 불렸다고 한다.

누나들을 따라서 노스볼티모어 수영클럽(North Baltimore Aquatic Club)에 6살 때부터 다녔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땐 얼굴을 물에 담그기 무서워해서 배영부터 배웠다고 한다.
이 나이 때에는 당연히 수영만 하는 게 아니고 ADHD 때문에 주체 못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서 야구, 농구, 라크로스, 미식축구 등 닥치는 대로 시켰다고 한다.


마이클펠프스 수영선수 성장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은
9살 때 밥 보먼 코치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보먼 코치는 선수시절엔 별 볼 일 없어서 일찌감치 은퇴하고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아동심리학을 전공했다.

명코치로 이름을 날리려는 차에 키우던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자 배신을 때리고 다른 코치에게 가버리자 수영계를 떠나서 볼티모어 주위 학교에서 농장경영학을 공부해서 말(馬)을 키우려고 하였다.
남는 시간에 동네 수영장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취직한 노스 볼티모어 수영클럽에 가서 만난 게 펠프스다.
보먼의 실력에 감탄한 총코치가 정규직을 제안했고 펠프스 전담을 맡을 것을 조건으로 수락했다고.
그러나 둘 사이는 화목하지만은 않았고 펠프스가 대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깨질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잘 극복해내 20여년을 함께했다.

보먼 코치는 자존심, 승부욕이 강한 펠프스를 다루는 스킬이 만렙으로 펠프스도 "그는 완벽주의자고 나는 솔직히 얼간이다"라고 인정할 정도다. 어쨌든 미시간 대학 코치로 보먼이 영입되자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펠프스도 미시간 대학교로 진학했고 수영선수 경력 내내 티격태격 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펠프스가 은퇴 번복을 선언하자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코치를 맡아 함께 올림픽을 준비하였으며, 밥 보먼은 미국 수영 대표팀의 총감독으로 선출되어 펠프스의 은퇴 경기까지 함께하였다. 참고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3달 전에 펠프스의 아들 부머 로버트 펠프스가 태어났는데 이 '로버트'라는 미들 네임이 바로 밥 보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밥은 로버트의 애칭인데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붙인 것으로 펠프스가 직접 생각해냈다고 하며 보먼이 이 사실을 듣고 매우 감격했다고 한다. 사제 지간의 깊은 정을 볼수 있는 일화이다.


어릴 때부터 대회란 대회는 모조리 휩쓸었고
12세 때 서너살 많은 선수들이랑 같이 연습했다고 한다.
애초에 보먼이 주목한 점이 펠프스의 똘끼 만땅인 멘탈과 나이에 비해 큰 체구라서 선수로 대성할 만한 싹수라고 여기고 전담코치를 맡았는데 예상보다 더 두각이 빨리 나타났다. 대회를 휩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제 나이 대 주니어 기록이란 기록은 밥 먹듯이 깨고 다녔다.
심지어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주니어 기록까지...

보먼 코치는 펠프스의 어머니 데비 펠프스에게 "마이클은 이제 올림픽을 준비해야 된다"고 선언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미국 대표로 15세에 약 100년 만에 최연소 선수로 발탁되었으나 접영 200m 결선 5위에 그쳤다. 그러나 2001 세계선수권에서 최연소(만 15세 9개월)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고등학교 때 부터는 프로로 전향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접영에선 먼치킨으로 알려져서 일반인 상대 강습 비디오도 찍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교시절엔 올림픽 준비로 학업을 1년 꿇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로 기량이 점점 일취월장해서 접영에서 개인혼영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각종대회에서 금메달을 '밥 먹듯이' 땄는데 2003 세계선수권에서도 금4 은2의 기록을 냈고
올림픽 대표로 무려 8종목(개인종목 5개, 단체종목 3개)의 국가대표로 뽑혔다.
이때 8종목을 보면 자유형 200m, 접영 100m&200m, 개인혼영 200m&400m 혼계영 4x100m 계영 4x100m&4x200m인데, 본인의 주종목인 접영과 함께 자유형에도 새로 도전한 이유가 ‘이안 소프와 겨루고 싶어서’라고.
원래 펠프스는 배영 200m까지 포함해 총 9종목의 출전권을 땄었고, 일정상 자유형 200m와 배영 200m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 메달 가능성이 더 높은 종목은 배영이었지만 펠프스는 메달 가능성보다 승부를 택했다.
결과는 자유형 200m에서 동메달, 계영 종목에서 동료의 실수로 하나의 동메달을 추가하고 이어지는 나머지 6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아테네 때 나온 8종목에서 그대로 다시 나와 금메달 8개를 획득했다. 그것도 세계 신기록 7개와 올림픽 신기록 1개로 말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참고로 동하계 올림픽 합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8개 이상 딴 선수는 6명에 불과하지만, 그 선수들은 서너 번 올림픽에 출전한 데에 비해 펠프스는 단 한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쓸어담았다. 1972 뮌헨 올림픽에서 7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마크 스피츠의 기록을 36년 만에 갈아 치운 것이다.


1st 개인혼영 400m: 헝가리의 라슬로 체흐와 미국의 라이언 록티를 여유있게 따돌리면서 세계 신기록 4분 3초 84를 달성. 접영부터 선두로 치고 나갔다가 배영에선 따라잡히고 평영부턴 차이를 벌리면서 자유형에선 독주했다. 이 기록은 15년만에 2023 후쿠오카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7월 23일에 프랑스의 레옹 마르샹이 4분 2초 50으로 드디어 깨며 우승했는데, 경기를 보러 온 펠프스는 기립박수로 축하해줬다.

2nd 계영 400m(4×100m): 단체 종목 첫 영자로 나가서 호주의 에이먼 설리번에 이어서 2위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기록은 47초 51 기존 세계 신기록보다 0.01초 늦은 기록이었다. 당시 설리번은 47초 24로 세계 신기록을 깼다. 재밌는점은 자유형 100m는 펠프스가 개인 종목도 안 나가는 서브 종목이라는 거다. 이후 2번째를 지나 3번째 영자자부터 프랑스에 밀리기 시작했으며 프랑스에는 이전 세계 기록 보유자인 베르나르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벌써 8관왕의 꿈이 멀어져가나 했지만 미국은 당시 만 33세 제이슨 리잭이 기적을 일으켰다. 첫 50m에선 기록이 더 벌어지면서 마지막 50m 남기고 베르나르와는 0.8초 차이였지만, 리잭이 인생 최대의, 아니 수영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질주로 0.03초 차이로 역전 성공. 리잭의 구간 기록은 46.06이었다. 이는 말이 안 나오는 미친 기록이다. 참고로 상술했듯 펠프스가 불참한 개인전 100미터 자유형에선 베르나르-설리번-리잭 순으로 금은동.

3rd 자유형 200m: 미친 경기력으로 박태환을 거의 2초차이로 따돌리면서 1분 42초 96 세계신기록 달성. 박태환은 1분 44초 85. 3위로 들어온 피터 밴더케이는 미시간 대학교 수영부 클럽 울버린에서 같이 훈련하는 동료이다.

4th 접영 200m: 종목의 의미가 없는 펠프스의 주종목이었다. 펠프스가 15세 때부터 가장 잘 했던 종목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건 뭐 보나마나일 거라 생각했으나 은근히 고전하였다. 펠프스 말로는 두 번째 턴을 할 때부터 수영 안경이 벗겨져서 물이 들어와 앞이 안 보이게 됐고 결국 직접 스트로크수를 세며 감으로 턴을 하고 찍으면서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경기 캐스터도 마지막 턴에서 펠프스가 너무 일찍 물 밖으로 나오자 '펠프스가 이상하네' 라고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금메달을 땄고, 세계 신기록 달성. 그런데, 펠프스 본인이 당초 목표로 잡았던 기록보다 1초 정도 더 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5th 계영 800m: 결과적으로 제일 쉬운 경기였다. 팀경기로 200m씩 4명이 릴레이 하는데 1번 영자로 나가서 당연히 1등으로 들어오고 세계 기록을 무려 5초 앞당기면서 미국팀이 우승했다.

6th 개인혼영 200m: 개인혼영 400m의 판박이로 여유 있게 우승.

7th 접영 100m: 문제의 경기다. 애초에 8관왕의 가장 큰 걸림돌로 우승 확률이 낮았다. 접영 200m와 달리 100m는 펠프스가 압도적이지 못한 편이었고 거기다 세르비아의 밀로라드 차비치와 같은 팀 동료 미국 이언 크로커는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스타트부터 느리더니 50m 턴에서 7등(혹은 6등)을 하며 역시나 힘드나 했지만 마지막 50m를 미친 듯이 달려서 차비치를 제치고 100분의 1초 차이로 역전 우승했다.

8th 400m 혼계영: 올림픽 전부터 꿀로 봤던 종목. 접영의 펠프스를 제외하고도 모든 영법서 메달권인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금메달은 무난하다고 일찍부터 찍어놨던 종목이었다. 배영-평영-접영-자유형 순으로 진행되는데 세 번째 영자로 나가서 혹시라도 파울이 안 나려고 일부러 스타트는 여유있게 입수해서 2위였던 미국을 여유있게 1위로 올려놓고 앵커에게 넘겨주었다. 펠프스 말로는 2번 영자까지 1위였던 일본의 접영 자유형 선수들이 기록들이 느려서 마음 편하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여기서 디스당한 일본의 자유형 영자는 NHK에서 제작하고 국내에선 EBS에서 방송된 펠프스 다큐에서 다른 선수들이 펠프스 훈련(허리에 납자루 차고 수직 돌핀 킥)을 따라하지 못하는 비교 대상으로 출연한 사토 히사요시였다. 이 선수의 기록은 100m 48초 후반대였는데, 펠프스가 앞서 자유형 100m에서 찍은 기록이 47.51초였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과 함께 행운까지 따라주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올림픽 8관왕을 달성함과 동시에 세계 신기록 7개와 올림픽 신기록 1개까지 경신했다. 당시 17일 12시 30분, 1위를 중국, 2위를 미국, 3위를 독일, 4위를 호주, 5위를 마이클 펠프스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올림픽 8관왕을 달성함으로서 당연히 미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한 명으로 등극했고, TV 출연, 각종 강연, 행사, CF 촬영 등 다양한 미디어에 모습을 비췄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 수영
그 수영계의 전설 마이클 펠프스의 명언을 따라 멋진 하루를 보내야겠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실패는 또 다른 기회다.”
-마이클 펠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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